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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 선희궁 터

불루마운틴 2015. 1. 22. 15:58

선희궁 터(서울시 유형문화재 32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배화여고를 돌아 나와서 도로를 따라서 쭉 가다보면 도로가 우측으로 구부러 지면서 서울 맹학교를 만나고 다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좌측에 보이는 곳이 서울 선희학교(구 서울농학교 : 1988년 개칭)입니다.

 

필운대도 그랬지만 선희궁지학교 건물 안쪽에 감추어져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희궁지는 선희학교 건물 중앙 안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 유아교육관 앞면 좌측으로 들어감.

 ▲ 학교 건물 중앙 통로를 지나면 사당이 보임.

학교 정문에서 쭉 들어가면 왼쪽에 선희학교 주 건물이 있고, 그 뒤편 건물(유아교육관) 앞의 좌측으로 들어가면 건물 중간 부분에 1층만 뚫린 작은 통로가 있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선희궁지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당이 보입니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안내판이 있으며, 사당 정면에 너무 바짝 학교 건물을 지어 놓았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반경 몇 백미터 안에는 건물을 함부로 지을 수 없는데, 아마도 문화재 지정 이전에 아무 생각없이 학교 건물을 지은 것 같습니다.

 

사당 정면은 조망할 수도 없었으며, 정면 사진 역시 찍을 수 없었습니다. 사당 안을 들여다 보니 단청은 화려하게 되어 있으나 내부에는 아무 것도 없더군요.

 

※ 2007년 1월, 11차 서울 문화유산 답사시 가 보니 선희궁 앞의 긴 학교 건물 한 동을 철거해 놓아서 정면     에서 제대로 선희궁 건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선희궁지 사당 좌측편 전경

 ▲ 선희궁지 사당 내부 전경

선희궁지(宣禧宮址)는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왕실의 사묘인 선희궁이 있던 자리이다. 후궁에게서 태어난 임금이 모친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사묘라고 한다. 처음에는 의열묘라 불렀으나 영빈의 손자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대우를 높여서 선희궁이라 이름을 고쳤다.

 

선희궁 신위는 고종 7년(1870년)에 일시 궁정동에 있는 육상궁으로 옮겨 졌다가 광무 원년(1897년)에 고종이 조서를 내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 왔으며, 현재의 사당도 그당시 지어졌다. 그러나 융희 2년(1908년)에는 선희궁을 폐지하고 신위를 다시 육상궁으로 모셨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1층 건물로 맞배지붕집이고 벽은 벽돌로 쌓았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엄숙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선희궁지 위치도

소재지 : 종로구 신교동 산1-1

 

선희학교 내에 선희궁지가 있음.

 

배화여고를 돌아나와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가다보면 맹학교를 지나고서 선희학교가 있습니다.

 

배화여고에서 선희학교까지의 거리도 1km 정도 됩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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