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지담기

[스크랩] [04] 서울 경모궁지

불루마운틴 2015. 1. 22. 15:55

서울 경모궁지(사적 237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구 서울대학교 본관에서 대학로를 건너면 서울대학교 병원이 있습니다. 본관 건물 앞에 있는 대한의원은 쉽게 눈에 띄어서 찾았으나 함춘원지는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찾을 수 없어서 창경궁으로 향했었습니다.

 

다시 한달 후에 근처 답사를 하면서 다시 가 보았습니다. 어렵사리 찾고 보니 위 사진과 같이 서울대학교 병원 본관 건물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코 앞에 두고도 못찾았다니...

▲ 함춘문 측면

▲ 함춘문 안쪽은 시굴중...

함춘원지(含春苑址)에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위 사진의 함춘문 뿐이며, 함춘문 뒤로는 석단(石壇)이 여러 군데 있는 것이 보입니다. 문화재 발굴을 하는지, 함춘문 주위의 넓은 곳, 여기 저기 땅이 파헤쳐 있었으며, 그 안으로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살짝 들어가서 사진 몇 컷 찍고 있는데, 발굴 관계자인 듯한 사람이 오더니 지금은 시굴(試掘) 중이라 사진을 찍어서 다른 곳에 공개하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이후에 다시 가 보았으나 시굴 후에는 모두 흙을 덮어 놓았으며, 주변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 함춘원지에 남아 있는 계단

▲ 함춘원지에 남아 있는 석단

함춘원은 조선시대의 정원으로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위치한 곳이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창경궁의 동쪽, 경희궁 개양문의 남쪽 등에 있는 궁궐의 정원 이름이 함춘원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중 그 입지나 규모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창경궁 동쪽의 것이다.

함춘원은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을 짓고,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곳에 나무를 심고 담장을 둘러 그곳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성종 24년(1493)년에 정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창경궁에 딸린 정원이 되었다.

연산군 때에는 함춘원 밖의 백성들의 집을 없애고 확장하였으며, 군대를 배치하여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고 대문을 만들었다. 그 후 중종은 백성들을 다시 돌아와 살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덕빈의 시신을 임시로 묻는 등 점차 관리가 소홀해졌으며, 인조 때에는 함춘원의 절반을 태복사에 나눠주었다. 이후 140여 년간 말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영조 40년(1764)에는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 지었고, 정조가 즉위하자 이곳을 경모궁으로 불렀으며, 정조 9년(1785)에는 이 일대를 정비하였다. 광무 3년(1899)에 경모궁에 있던 장조, 즉 사도세자의 위패를 종묘로 옮기면서 경모궁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으며, 경모궁도 경모전으로 이름을 고쳤다.

광무 4년(1900)에는 경모궁 터에 6성조 즉 태조·세조·성종·숙종·영조·순조의 초상을 모시던 영희전을 옮겨 세웠다.

 

그 뒤 일제가 나라를 강점한 후 경모궁 일대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해 옛 건물이 불타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함춘원은 조선 후기의 세련된 건물 중 하나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함춘문 뿐이다.

 

◀ 함춘원의 옛날 사진(서울육백년사 홈페이지)

함춘원지 위치도

소재지 : 종로구 연건동 28-21

 

빨간 깃발이 있는 곳이 함춘원지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울대학 병원 방향으로 횡단 보도를 건너서 서울대학 병원 본관 뒤편으로 가면 함춘문이 있으며, 그 일대가 함춘원지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함춘원지까지의 거리는 400여미터입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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