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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06]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불루마운틴 2015. 1. 22. 15:54

서울 문묘 및 성균관/서울 문묘와 성균관(보물 141호/사적 143호)
서울 문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59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 서울 문묘의 명륜당 전경

서울대학교 병원에 있는 함춘원지와 대한의원을 보고 창경궁을 둘러보면 좋습니다만, 제가 궁궐은 아직 소개하지 않기 때문에 성균관대학교내에 있는 서울 문묘로 발길을 돌립니다. 대한의원에서 성대까지는 1.3km로 조금 멉니다만, 문화유산 답사는 걷는데 익숙해야 합니다.

서울 문묘에는 공자와 그 제자, 설총과 최치원 등 우리나라의 유학자 18위의 위패를 모시고 1년에 두번씩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성균관대학교 내에 있는 서울 문묘와 문묘 일원 그리로 은행나무가 문화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문묘입니다.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도안된 명륜당의 우표가 있어서 우측에 소개합니다. 최근에는 천원짜리 도안에도 나와 있더군요.

▲ 탕평비각(학교 정문 좌측)

▲ 문묘의 명륜당 입구(우측 문)

▲ 하련대(下輦臺)

정문 바로 왼쪽에는 탕평비각이 있으며, 비각 우측에는 하마비가 서 있습니다. 비각 안에 있는 탕평비는 영조 18년(1742) 자신의 탕평 정책을 알리고 열의를 과시하기 위하여 유학의 본산이며, 관학의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경계 문구를 새긴 탕평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대성전이 있는 문묘 내부는 개방을 하지 않아서 들어갈 수 없으며, 학교 정문 수위실 우측 입구에 있는 안내도를 보고 명륜당 방향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가마를 놓았던 곳인 하련대가 있습니다. 명륜당은 우측 끝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앞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큰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좌우로 두 그루가 있는데 왼쪽 은행나무는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크며, 나무의 가슴 높이 둘레도 성인 몇 명이 팔 벌려서 둘러야 될 것 같습니다.오른쪽 은행나무는 조금 작습니다.

▲ 천연기념물 59호인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 전경(가을에는 노란 은행잎들로 대단할 것 같습니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는 문묘의 명륜당 앞에 서 있는데,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나무는 높이 21m, 가슴높이 둘레 7.3m에 수령이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 은행나무 밑둥 전경

▲ 동재 우측 나무

▲ 동재 좌측 나무

은행나무는 가지가 넓고 잎이 무성해서 여름에 은행나무 밑에 있으면 시원하겠습니다. 은행나무의 한 쪽 가지가 축 늘어져서 기둥을 받쳐 놓았으며, 나무 밑둥 옆에는 양석(陽石)인 길죽한 돌막대기가 서 있습니다. 은행나무 정면에는 명륜당이 있으며, 우측의 동재 방향에도 오래된 큰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2003년에 갔을 때는 명륜당 건물 오른편이 비둘기 오물로 인하여 지저분하더니 2004년에 가보니 명륜당은 보수 공사중에 있었으며, 2005년에는 공사가 완료되어 깨끗해 졌습니다.

▲ 명륜당(2003년)

▲ 명륜당 전경(2003년)

▲ 명륜당 좌측 뒷편 전경(2003년)

명륜당(明倫堂)은 대성전의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선조 39년(1606)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중당과 양 옆에 있는 익실로 구분하는데, 중당은 옆면에서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익실은 팔작지붕으로 중당보다 조금 낮게 구성되어 위계(位階)를 나타내 주고 있다. 지붕과 처마의 높낮이와 전체적인 건물의 균형이 우리나라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명륜당 앞에 마주하여 남북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동재·서재는 기숙사 공간이다.

▲ 동재 전경

▲ 서재 전경

▲ 비천당

명륜당 앞에서 내려다 보면 좌측에 동재, 우측에 서재 건물이 길 게 있으며, 명륜당 뒤로 나가면 비천당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비천당은 대과및 소과 시험때의 시험장이었다고 합니다. 명륜당 뒤편 우측에 있는 존경각은 도서관, 지금은 전국 서원 연합회 사무실로 쓰고 있으며, 그 옆에 있는 육일각은 활쏘기에 관한 기구를 보관했었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 보면 안쪽에 건물들이 많이 있으며, 깊숙한 안쪽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 존경각

▲ 육일각

▲ 정록청

보물로 지정된 서울 문묘의 건물 및 현대건축물을 제외한 지상시설물은 서울 문묘 일원이란 명칭으로 사적 14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문묘 일원으로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존경각과 향관청, 비천당, 계성사, 남쪽 좌우에 유생들이 살면서 글을 읽던 동재와 서재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으며, 동재 동편에는 식당이 있고, 그 위쪽으로는 창고, 육일각, 잡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다시 학교 정문으로 나와서 내부 도로를 조금 올라가면 우측편에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신삼문이 있습니다. 대성전은 개방을 하지 않아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으며, 은행나무 앞에서 대성전 뒷 모습만 보았습니다.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게 매년 봄, 가을 두차례 제사를 지내는 의식인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묘를 포함한 성균관 일대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 보물 141호인 서울 문묘의 대성전(서울문화재 사진)

서울 문묘<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삼문>(서울文廟<大成殿ㆍ明倫堂ㆍ東廡ㆍ西廡ㆍ三門>)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우고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것을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었으나, 이 역시 임진왜란으로 타버려서 지금 있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묘는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으로 대성전을 비롯한 동무·서무 등 제사를 위한 공간인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동재·서재 등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명륜당 구역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 신삼문

▲ 대성전 전경(서울문화재 사진)

▲ 대성전 뒷편 전경

대성전(大成殿)은 선조 34∼35년(1601∼1602)에 지은 건물로,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두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중국 건축 기법을 느끼게 하며, 대성전 앞에 마주해 있는 동무와 서무는 공자의 제자와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선조 36∼37년(1603∼1604)에 세웠고, 동무와 서무 끝에서 시작하여 주위로 담장을 둘러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구역을 나누었다.

서울 문묘 안내도

성균관대학교 위치도

소재지 : 종로구 명륜동3가 53

 

빨간 깃발이 있는 성균관대학교내에 문묘와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대한의원에서 성균관대학교까지의 거리는 1.3km로 조금 멉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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