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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8] 서울 한양도성[광희문]

불루마운틴 2015. 1. 22. 15:41

서울 한양도성[광희문](사적 10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장충단 공원에서 마지막 답사지인 광희문까지의 거리는 약 1Km가량 됩니다. 한국의 집에서부터 남산을 넘어서 이 곳에 오기까지는 5시간 이상을 걸어서 아마도 지치실 겁니다.

 

광희문(光熙門)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서울 성곽의 사소문(四小門) 중의 하나입니다. 서울 성곽은 아래의 성곽 위치도에서 보시다시피 훼손된 구간이 많이 있습니다만, 계속해서 복원 중에 있습니다.

 ▲ 광희문 정문 좌측 성벽 전경

▲ 광희문 정문 전경

광희문은 지난 1975년 성곽 25m와 함께 복원됐으나 나머지 부분은 허물어진 자리에 주택이 들어서거나 담장으로 쓰이면서 복원이 어려웠으나 얼마 전에 광희문 남쪽 성곽을 높이 4~5m, 길이 99.3m를 복원 정비하여 주변이 깨끗해졌습니다.

 ▲ 광희문 후면 전경

 ▲ 광희문 후면의 복원된 우측 전경

성문 안쪽 우측 계단을 오르면 성벽 초입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일패장 성세각(一牌將 成世珏) ’, ‘석수도변수 오유선(石手都邊手 吳有善)이라 쓰인 글씨(아래 좌측 사진) 가 보입니다. 이는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새겨 놓은 공사 담당 책임자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서울 문화유산 4차 정기답사지의 코스가 길고 남산을 넘어서 이 곳까지 오면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 출출할 겁니다. 이 근처에 추억의 신당동 떡볶이 골목(하단 지도 참고)이 있으니 가족과 함께 가셔서 떢복이를 드셔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성벽에 새겨진 공사 책임자 이름

 ▲ 광회문 좌측 성벽과 조경 전경

 ▲ 광희문 우측 바닥의 표식 동판

시구문(屍軀門)·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422년(세종 4) 개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숙종실록》에 1711년(숙종 37) 민진후의 건의로 금위영(禁衛營)으로 하여금 개축하게 하고, 문루는 목재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후에 개축하기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1719년(숙종 45)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그 후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으며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복원시 홍예석축(虹霓石築)을 해체해 남쪽으로 15m 옮기고, 문루 12평을 새로 짓고 주변의 200평을 녹지화했다.    - 네이버에서 -

서울 성곽 위치도

서울 성곽은 숭례문(남)과 흥인지문(동)을 비롯해 숙정문(북), 돈의문(서)의 4대문과, 홍화문(동북), 광희문(동남), 창의문(서북), 소덕문(서남)의 4소문을 갖췄으나 일제 강점기에 성곽이 도시 발전을 저해한다 해서 성곽 상당 부분과 일부 성문이 해체됐다.

 

인왕산과 북악산, 남산과 낙산 같은 산악지대에서만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들 구간을 포함해 전체 18.2㎞ 중 현존하는 성벽 구간은 10.5㎞. 나머지 7.7㎞는 멸실됐다.

광희문 위치도

소재지 : 중구 광희동

 

빨간 깃발이 있는 곳이 광희문입니다.

 

장충단 공원에서 광희문까지의 거리는 약 1Km 정도됩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 위치도

빨간 깃발이 있는 골목이 신당동 떡볶이 골목입니다.

 

광희문에서 신당동 떢볶이 골목까지의 거리는 600여 미터로 한 10여분 걸어가야 합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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