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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 서울 청계천 수표/구 영릉 석물

불루마운틴 2015. 1. 22. 15:39

서울 청계천 수표/구 영릉 석물(보물 838호/서울시 유형문화재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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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유산 답사

▲ 청량리 세종대왕 기념관 건물 우측에 놓여진 수표 전경

홍릉수목원 정문 건너편에 세종대왕 기념관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기념관 입구에는 플래카드에서 보시다시피 세종대왕 기념관이라기 보다는 아예 세종대왕 예식장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관람객이 찾지 않다보니 기념관의 유지를 위해서는 수익 사업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합니다만...

▲ 세종대왕 기념관 정문

▲ 세종대왕 기념관 건물 전경

세종대왕 기념관 정문을 들어서서 조금 올라가면 좌측에 기념관 건물이 있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내부의 시설이나 전시물이 허접하더니만, 두 번째 갔을 때는 그래도 전시물도 늘어나고 관람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동선을 제대로 해 놓았더군요.

세종대왕 기념관 내부는...

세종대왕 기념관에서는 보물 763호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7∼10>(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七∼十>), 보물 769호인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보물 772호인 금강경삼가해-권1,5(金剛經三家解-卷1,5)를 보관하고 있으며, 세종대왕과 관련된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전적(典籍)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 보물 763호

▲ 보물 772호

▲ 보물 838호

수표는...

▲ 수표 앞면

▲ 수표 앞면 상단

▲ 수표 뒷면 하단

보물 838호인 수표(水標)는 기념관 건물의 우측 편에 있습니다. 이 수표는 청계천의 수표교 앞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수표교는 중구 문화유산 답사 코스에서 소개를 한 바 있습니다만,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장충단 공원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지금은 청계천이 모두 복원되었지만 수표교는 청계천으로 이전한다고 확정만되었지 예산이나 이전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아직 옮겨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수표교가 제자리로 옮겨지면 수표도 수표교 앞으로 이전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문화재도 다 짝이 있고 제자리가 있습니다. 문화재는 한 단체에서 소유하고 있으면 절대 내 놓는 경우가 없습니다만 아래의 옛 사진과 같이 청계천에 함께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수표교 앞에 수표가 놓여 있었던 모습입니다. 위 옛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 왔습니다.

수표는 청계천(淸溪川)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 설치한 하천 수위계(水位計)이다. 조선 세종 때 측우기를 만들어 강우량의 과학적 측정법을 확립하고, 청계천과 한강의 수위도 함께 재도록 한 것이다.

세종 때 수표는 성종 때 돌기둥에 눈금을 새긴 수표로 개량하였는데, 그 무렵부터 수표 근처에 놓은 다리를 수표교(水標橋)라 부르게 되었다. 이 수표는 그 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수표는 한강변과 청계천 2곳에 설치하였는데 한강변의 것은 바윗돌에 직접 눈금을 새긴 것이고, 청계천의 것은 낮은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운 형태였다.

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삿갓 모양의 머릿돌이 올려져 있고, 밑에는 직육면체의 초석이 땅 속 깊이 박혀있다. 돌기둥 양면에는 1척(21㎝)마다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을 새기고 3·6·9척에는 O표시를 하여 각각 갈수(渴水)·평수(平水)·대수(大水)라고 표시하였다.

수표는 세종 때 세계 최초의 하천 수위계 전통을 이은 유일한 유물로서 귀중한 문화재이다. 원래 청계천 수표교 옆에 있던 것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수표교와 함께 장충단 공원에 옮겼다가, 다시 현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구 영릉 석물은 왕릉 여행에서 이미 소개한 내용입니다.

구 영릉 석물도 세종대왕 기념관 외부에 전시되어 있으며, 왕릉 여행에서 방치된 천장전 석물들이란 제하로 이미 소개를 드렸던 내용을 그대로 첨부합니다.

 

대부분 조선조의 왕릉에 대해서는 잘 알아도 천장(遷葬) 전(前) 석물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입니다. 왕릉 전문가라는 분들은 설사 안다고 해도 그 석물들이 지금은 어떤 상태로 관리/보관되고 있는지는 아마도, 잘 모를 겁니다.

 

우리들이 천장 전의 석물을 가볍게 생각할 지 모르나 천장 전의 석물들도 역사적인 의의를 갖고 있으며, 석물의 조각술이 뛰어나서 잘 보존되어야 합니다. 천장전 석물들이 어떻게 방치되었었는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구 영릉(세종) 석물이란...

구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태종의 능인 헌릉의 서쪽 산등성이에 조성되었으며,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조 이후 구 영릉의 위치가 풍수지리상 길지가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덤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옮기지 못하다가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천장하였습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왕릉인 구 영릉을 구성하는 구 영릉 석물들은 여주로 천장될 때, 거리가 멀어서 운반의 어려움 때문에 땅에 묻혔다가 1973∼1974년 발굴 당시 일부는 망실되고, 일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 구 영릉 신도비

▲ 난간석의 석주

▲ 죽석, 상석, 고석 1개 등

조성 당시의 석물의 품목과 수량이 다 남아 있지는 않지만, 구 영릉 석물들은 조선 초기 왕릉의 규모, 석물 배치 방식과 제작 수법 등을 알 수 있고, 당시의 양전척, 주척 등을 환산할 수 있게 하며, 나아가 세종시대의 국력과 문화발달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구 영릉 석물 (舊 英陵 石物) 13점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4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구 영릉 석물의 현실은...

발굴된 석물들은 현재,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외부에 전시(제가 보기에는 방치입니다.)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 있는 구 영릉 석물들은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일부 왕릉의 석물들은 조잡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나, 이 곳에 있는 구 영릉 석물은 방치되다시피하고 많이 훼손 되었지만 석물들이 아주 멋 집니다. 당시 시대상 연구에 중요한 유물입니다.

▲ 목 잘린 석마

▲ 석양

▲ 훼손된 난간석의 석주

구 영릉의 석물들은 관심이 없으면 찾기가 쉽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석물들은 기념관 옆 건물의 언덕 밑 좁은 곳 있었으며, 석물들은 건물의 벽을 보고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구 영릉 석물이 아닌줄 알았습니다. 구 영릉 석물임을 확인하고 처음에는 놀랐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신도비는 도로 옆 한 켠에 잘 전시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 문인석 한 쌍

▲ 무인석 한 쌍

▲ 문무인석과 건물 사이는 1미터

저는 문무인석이 비록, 돌로 만들어졌으나 선조들의 영혼이 깃 들어 있는 반 생명체라고 봅니다. 현재의 구 석물들이 벽을 보고 돌아 선 것이 현재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방치된 구 영릉 석물' 소개 그 이후...

왕릉 여행의 석물 소개시 '방치된 천장전 석물들'에서 구영릉 석물과 유강원지 석물의 보존 실태에 대해서 사진과 함께 보여 드렸었습니다. 그 이후가 저도 궁금해서 지난 주에 청량리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관을 다녀 왔으며, 그 결과를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문화재 행정모니터로 활동하면서 유강원지의 석물들에 대해서는 2004년 5월 모니터 보고서를 올렸으며, 구 영릉 석물에 대해서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번 더 확인하고 보존 실태 보고서를 작성할 요량으로 세종대왕 기념관을 들어섰습니다.

▲ 아니! 석물들이 어디로 갔을까...

▲ 신도비에 보호각을 세웠더군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석물이 방치되어 있던 곳을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 석물들이 어디로 갔지!!! 세종대왕 기념관 앞으로 가 보니 기념관 잔디밭 한 켠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전시해 놓으니 이제는 세종대왕 기념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구석에 방치되었던 구 영릉 석물들이 세종대왕 기념관 앞의 밝은 곳으로 이전 전시된 모습입니다.

이틀 뒤, 세종대왕 기념관 책임자이신 차재경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일부 보완할 사항들에 대해서 몇 가지 건의를 드렸더니, 선생님 말씀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안내판과 보존을 위한 회랑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구 영릉 석물의 석호 2마리가 발굴(1973년) 이전에 도굴되었다가 회수되어 단국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것을 이 곳으로 가져 올 수 없냐고 여쭈어보니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쉽게 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석호 2마리가 더 있는데, 1970년대, 여주 영릉의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세종전의 개막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온다고 여주 영릉의 관계자가 빼앗듯이 가져 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영릉의 세종전 앞에 해태상 처럼 좌우로 서 있습니다.

위 우측의 세종전 입구 좌우로 석호가 보이시지요. 이 석호 2마리가 30여년 전에 여주의 세종대왕 유적관리소에서 빌려 갔다는 석호의 모습입니다. 왕릉을 지키라고 만들어 놓은 호석을 유물관리소 앞에 세워 놓은 모습이 좋게 보이질 않습니다.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아야지요...

 

위 세종전 사진은 제가 일부러 확인하러 갈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카페 회원님께서 사진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찡그렸던 석물들이 환하게 웃는군요. 석마 등에 타면 좀 어떠랴! 앞으로 너희들이 커서 잘 보존하거라.

제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석호 4마리가 한 곳으로 모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개체의 문화재라면 몰라도 왕릉의 석물은 무리가 한 곳에 있어야만 하며, 제가 42곳의 왕릉의 석물들을 전부 보고, 사진으로도 모두 갖고 있습니다만, 구 영릉의 석물은 조선도 왕릉의 석물 중에 으뜸입니다. 

 

더군다나 몇 백년을 땅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풍상에 노출되지 않아서 석물의 문양이 깨끗하고 선명합니다. 그런데, 30년 동안 방치를 해서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이 안타까우나 지금이라도 보존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다행입니다.

석호를 찾아서...

▲ 단국대학교 박물관 앞을 지키는 석호 한 쌍... 왕릉을 지켜야 할 수호물이 박물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 영릉 석물 중에 석호상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여주 영릉은 2번을 갔으나 당시는 그 사실을 몰라서 세종전 앞에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었습니다. 여주는 가기가 쉽지 않아서 단국대학교에 있다는 석호를 찾아 나섰습니다

▲ 조선조 왕릉 석호 중에 최고의 걸작입니다.

단국대학교는 교통편이 좋지 않더군요. 지하철 타고, 내려서 마을버스 타고, 다시 내려서 한참 동안 언덕을 오르내린 끝에 단국대학교 박물관에 도착하니 건물 입구 좌우로 배치된 석호상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두 마리의 석호상을 보는 순간 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석호의 크기도 컸지만 당시의 조각술이 뛰어나서 살아서 움직일 것 같았으며, 선이 굵으면서도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더군요. 그 놈 참, 인물도 잘 생겼습니다.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어떤 경위로 이 곳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드시 구 영릉 석물들은 한 곳으로 모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 얼굴 표정이 살아 있는 듯 합니다만, 어딘가 모르게 슬픈 모습도 엿보입니다.

문화재청에 제언은...

<구 영릉 석물 조사 보고서>

 

1.문화재 내용

 - 명     칭 : 구 영릉 석물
 - 종     목 : 서울시 유형문화재 42호
 - 지 정 일 : 1980.06.11
 - 분     류 : 석비
 - 수     량 : 13기
 - 소 재 지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산1-157 세종대왕기념관 경내

 

2. 문화재 현황

 - 구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태종의 능인 헌릉의 서쪽 산등성이 조성되었다가 예종 원년(1469)에 구    영릉의 위치가 풍수지리상 길지가 되지 못한다는 논의가 있어 현재의 여주 영릉으로 천장하게 되었습니다.

 -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왕릉인 구 영릉을 구성하는 구 영릉 석물들은 여주로 천장될 때 운반상의 어려움 때문    에 땅에 묻혔다가 1973 ∼1974년 발굴 당시 일부는 망실되고 일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당시, 발굴된 석물 중에 석호상은 1974년 발굴 이후 2기가 현재의 영릉으로 이전되어 갔고, 나머지 2기는 발굴    전 도굴되었다가 회수되어 단국대학교 박물관에 옮겨져 있습니다.

 

3. 관리상태

 - 구 영릉 석물들(세종대왕 신도비를 포함하여 13점)은 1980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청량리 세종대왕 기념관 한    쪽 구석에 얼마 전까지 방치되어 있었으나 2004년 10월에 가 보니 기념관 앞의 잔디밭으로 올려서 진열, 전시    되어 있었으며, 향후 회랑까지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4. 건의사항

 ◈ 관리상태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 있는 석물(석호) 회수를 위한 건의 사항입니다.

 

여주 영릉의 세종전 앞에 세워 놓은 석호 2점과 단국대 박물관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석호 2점은 한     곳(세종대왕 기념관)으로 합쳐져야 합니다.

 

 - 조선조 왕릉의 석물들은 따로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현재, 세종대왕 기념관에 전시된 석물 12점    이외에 석양 2점과 석마 2점의 행방은 모르나 석호 4점은 여주의 영릉과 단국대 박물관에 있습니다. 이 모든    석물이 어디에 있든지 한 곳에 같이 있어야 왕릉 석물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 특히, 석호는 능을 지키는 수호물이지 박물관 앞에 세워 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것은 망자를 욕되게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 구 영릉 석물은 조선조 왕릉 석물 중에 최고의 석물입니다.

 
- 남한에 있는 조선조 왕릉 42곳의 왕릉 석물 중에 구 영릉 석물은 단연 최고입니다. 크기 뿐 아니라 석물의 조    각들이 정교하고 특히, 석호는 살아있는 듯 합니다.

 - 저는 석물이 비록, 돌로 만들어졌으나 망자의 영혼이 깃 들어 있는 반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4점의    석호가 제 가족들을 만나 한 곳에서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는 이산의 아픔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세종대왕의 뜻일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

 

 ☞ 관리를 제대로 못할 것 같으면 다시 땅에 묻으십시요.

 

 - 구 영릉 석물들은 500여년을 땅 속에 묻혀 있어서 풍상에 깍이고 훼손되지 않았으나 세상에 나온 30 여년 동안    500년에 겪어야 할 풍상을 다 겪은 것 같습니다.

 - 관리도 잘 못할거면서 500년을 곤히 잠자고 있던 석물들을 꺼내서 깨지고, 터지고, 없어지고... 늦었지만 지금    이라도 잘 관리될 수 있는 기초는 만들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앞으로는 훼손없이 잘 보존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2004.12.29 -

문화재청 답변은...

☞ 위 제언에 대한 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 담당자 답변(2005.01.14)은...

ㅇ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ㅇ 귀하께서 단국대박물관과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 각각 2점씩 보관,전시 중인 구영릉 석호 4점이 세종대     왕기념관으로 회수되어 다른 석물들과 함께 전시되어야 한다고 건의하신 사항에 대해 세종대왕기념사업     회에 문의한 결과, 향후 이 문제에 관해 해당기관과 협의할 계획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ㅇ 앞으로도 문화재 행정발전 및 효율적인 보존과 관리를 위한 지속적인 조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저도 궁금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갖고 있는 쪽이나 돌려 받아야 할 곳에서 모두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한 놈이 문제를 제기해서 성가시게 하느냐는 느낌입니다. 제가 조선조 왕릉과 묘에 관련해서 활동하는 한은 계속 지켜 볼 것입니다.

세종대왕 기념관 위치도

소재지 :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산1-157

 

수목원에서 횡단보도만 거너면 세종대왕 기념관입니다.

 

위의 빨간 깃발이 있는 곳에는 수표 가, 아래의 빨간 깃발이 있는 곳에는 구 영릉 석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맨 아래 화살표가 있는 곳에는 신도비가 있으며, 이 곳에서 담장 너머로는 영휘원이 보입니다.

직접 갈 경우에는

6호선 : 고려대역 3번 출구 : 도보로 5분 거리

1호선 : 청량리역 2번 출구 : 도보로 10분 거리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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