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 이용 집터(서울시 유형문화재 22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
다음 코스인 무계정사지로 가려면 창의문에서 부암동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와서 횡단 보도를 건넙니다. 동사무소 사이의 골목으로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우측에 현진건 집터였다는 표석이 보입니다.
무계정사지는 한 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던 현진건 집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넓은 공터가 있으며, 우측에는 흙더미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 흙더미는 현진건의 옛집을 헐어버린 잔해입니다. |
▲ 무계정사지 길모퉁이에 있는 현진건 집터 표석 |
▲ 무계정사지에 위치한 고택 |
정면에는 고택이 한 채 있으며, 그 옆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고택 입구의 계단을 올라서면 오른쪽에 문화재 안내판과 바위에 새겨진 武溪洞(무계동)이란 글씨가 보입니다. 이 곳에는 'ㄱ'자 모양의 고택 외에는 단지, 무계동이란 글씨가 새겨진 작은 바위뿐이며, 옆에 있는 고택이 무계정사가 있던 터였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고택에서 기르는 개가 얼마나 짖어 대는지 잠시도 있기 힘듭니다. 개가 짖어대면 고택에 사는 사람이 나옵니다. 고택 사진을 찍으면 뭐라고 합니다. |
▲ 무계정사지 |
▲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 |
무계정사지 밖의 골목으로 나와서 20여 미터 정도 올라가면, 우측 산자락 바위면에 靑溪洞天(청계동천)이라 새겨진 각자바위가 있습니다. 이 곳 주변이 옛날에는 경치 좋은 계곡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 헐어 버린 현진건 고택의 잔해 |
▲ 무계정사지 왼쪽 산자락에 새겨진 청계동천 |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사용하던 정자인 ‘무계정사’가 있던 터로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1만 권의 책을 갖추고 용산 강가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선비들과 함께 시를 즐겼다. 그러나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나, 이곳에는 커다란 바위면에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무계동(武溪洞)’이란 글씨가 큰 현판 모양으로 새겨져 있어 이곳이 ‘무계정사’가 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
☞ 종로구 문화재 심의위원회가 1994년 부터 현진건 고택에 대해 수차례 문화 재 지정과 매입, 복원, 기념관건립 등 을 건의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현진건 고택의 보존에 대하여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여론 형 성이 되지 못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 더니 결국은 헐리고 말았습니다.
☞ 현진건 고택이 헐리고 난 다음부터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 언론에 집중 보도되었고, 이로 인하여 최근에는 많 은 사람들이 근대문화유산 보존의 중 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 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
▲ 헐리기 이전의 현진건 고택 모습(신문에 실린 사진) |
|
무계정사지 위치도 |
소재지 : 종로구 부암동 319-4
빨간 깃발이 있는 지점에 무계정사지가 있습니다.
창의문에서 부암동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와서 횡단 보도를 건넙니다.
동사무소 사이의 골목으로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우측에 현진건 집터였다는 표석이 보입니다. |
'◈─…―• 유적지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05] 길상사 (0) | 2015.01.22 |
---|---|
[스크랩] [01] 서울 한양도성[창의문] (0) | 2015.01.22 |
[스크랩] [04] 석파정 (0) | 2015.01.22 |
[스크랩] [08] 석파정 별당 (0) | 2015.01.22 |
[스크랩] [07] 세검정 터 (0) | 2015.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