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지담기

[스크랩] [02] 안평대군 이용 집터

불루마운틴 2015. 1. 22. 16:04

안평대군 이용 집터(서울시 유형문화재 22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다음 코스인 무계정사지로 가려면 창의문에서 부암동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와서 횡단 보도를 건넙니다. 동사무소 사이의 골목으로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우측에 현진건 집터였다는 표석이 보입니다.

 

무계정사지는 한 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던 현진건 집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넓은 공터가 있으며, 우측에는 흙더미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 흙더미는 현진건의 옛집을 헐어버린 잔해입니다.

 ▲ 무계정사지 길모퉁이에 있는 현진건 집터 표석

 ▲ 무계정사지에 위치한 고택

정면에는 고택이 한 채 있으며, 그 옆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고택 입구의 계단을 올라서면 오른쪽에 문화재 안내판과 바위에 새겨진 武溪洞(무계동)이란 글씨가 보입니다. 이 곳에는 'ㄱ'자 모양의 고택 외에는 단지, 무계동이란 글씨가 새겨진 작은 바위뿐이며, 옆에 있는 고택이 무계정사가 있던 터였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고택에서 기르는 개가 얼마나 짖어 대는지 잠시도 있기 힘듭니다. 개가 짖어대면 고택에 사는 사람이 나옵니다. 고택 사진을 찍으면 뭐라고 합니다.

 ▲ 무계정사지

 ▲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

무계정사지 밖의 골목으로 나와서 20여 미터 정도 올라가면, 우측 산자락 바위면에 靑溪洞天(청계동천)이라 새겨진 각자바위가 있습니다. 이 곳 주변이 옛날에는 경치 좋은 계곡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헐어 버린 현진건 고택의 잔해

 ▲ 무계정사지 왼쪽 산자락에 새겨진 청계동천

무계정사지(武溪精舍址)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사용하던 정자인 ‘무계정사’가 있던 터로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1만 권의 책을 갖추고 용산 강가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선비들과 함께 시를 즐겼다. 그러나 대군이 역모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 1년(1453) 이후에는 이곳도 폐허가 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나, 이곳에는 커다란 바위면에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무계동(武溪洞)’이란 글씨가 큰 현판 모양으로 새겨져 있어 이곳이 ‘무계정사’가 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 종로구 문화재 심의위원회가 1994년     부터 현진건 고택에 대해 수차례 문화     재 지정과 매입, 복원, 기념관건립 등     을 건의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현진건 고택의 보존에 대하여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여론 형     성이 되지 못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     더니 결국은 헐리고 말았습니다.

 

☞ 현진건 고택이 헐리고 난 다음부터는     근대문화유산에 대해서 언론에 집중     보도되었고, 이로 인하여 최근에는 많     은 사람들이 근대문화유산 보존의 중     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     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헐리기 이전의 현진건 고택 모습(신문에 실린 사진)
'현진건 고택' 흔적도 없이…집주인 굴착기 동원 철거
[조선일보 2003-11-27 19:05]

[조선일보 신형준 기자]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B사감과 러브레터’ ‘빈처’ 등 주옥 같은 문학작품으로 일제시대 사실주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빙허 현진건(憑虛 玄鎭健·1900~1943) 선생의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고택(古宅)이 집주인에 의해 지난 14일 헐려 버렸다.

 

1930년대에 지은 대지 267평, 건평 70평 한옥으로, 서울시는 현 선생의 고택 보존을 위한 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이었지만, 최근 들어 폐가로 방치된 상태였다.

조선일보 기자로도 활약했던 현 선생은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때 손기정 선생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1937년부터 이 집에 거주하며 ‘무영탑’ ‘흑치상지’ 등 묵직한 역사소설을 집필하다가 1943년 타계했다.

 

27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한옥 흔적은 전혀 남지 않았고, 수백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만이 마당에 남아 있었다. 정문 앞에는 이 집에서 현 선생이 작품활동을 했음을 알리는 동판 표석이 있었으나


분실돼 ‘다시 동판을 제작할 방침’이라는 지난 7월 22일자 종로구청장 명의의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현재 집주인 J씨의 친척이 지난 14일 아침 굴착기 등을 동원, 한옥을 철거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문화재 보존지구 아니냐고 묻자 작업자들이 ‘주인이 하는 건데 왜 시비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들은 “올해 초 이곳에 기념관을 짓는 문제를 시에 건의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고택을 보존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증명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집주인 J씨에게 철거 확인을 위해 27일 오후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관리인은 “J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계정사지 위치도

소재지 : 종로구 부암동 319-4

 

빨간 깃발이 있는 지점에 무계정사지가 있습니다.

 

창의문에서 부암동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와서 횡단 보도를 건넙니다.

 

동사무소 사이의 골목으로 200여 미터를 올라가면 우측에 현진건 집터였다는 표석이 보입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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