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지담기

[스크랩] [1]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불루마운틴 2015. 1. 22. 15:33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사적 171호)                          written by 서울 문화유산 답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바라 본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 전경

종로구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으나 이번에는 인사동 주변 문화유산 답사 코스를 소개합니다.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 동상 우측(교보문고 앞)에 있는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서부터 9곳의 문화유산을 둘러 보고 인사동 골목에서 답사를 마칠 겁니다.

 

많은 분들이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빌딩 앞에 위치한 비각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셨을 겁니다. 비각 안에는 고종이 왕에 오른지 40년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가 있습니다.

▲ 만세문 우측편과 도로원표전경

▲ 만세문 전경

칭경기념비 정면은 도로와 접해 있어서 우측(사진 위 좌측)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비각 앞에는 좌우로 돌 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아 놓은 만세문이 았으며, 가운데는 홍예문 같이 타원형의 돌을 얹고, 중앙에는 '萬世門'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영왕(英王) 이은(李垠)의 글씨라고 합니다.

▲ 만세문 글씨

▲ 중앙 상단 좌우로 조각

▲ 중앙 하단 앞뒤로 조각

▲ 대문 하단 좌우로 조각

만세문의 돌 기둥 각 면에는 동물 조각이니 문양들이 많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이 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입니다.

▲ 보수한 내용이 적힌 동판

▲ 기념비전의 답도

▲ 서울의 도로원표

만세문 안으로 들어가면 이중으로 쌓은 기단 위에 큰 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앞 좌측에는 동판이 있으며, 서울시장 명의로 비각을 보수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밖에 안내판이 있는데, 오히려 흉물스러워서 철거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에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답도가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우측 앞 바닥에는 서울과 전국 각 지역과의 거리를 알리는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습니다. 도로원표는 1914년에 설치되었으며, 이순신장군 동상이 세워진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 기념비전 계단 앞에서 바라 본 전경

▲ 기념비젼 앞에서 내려다 본 만세문

두 단의 계단을 오르면서 비각 입구 위쪽을 보면, 기념비전(紀念碑殿)이란 편액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 칭경기념비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석를 보호하기 위해서 세운 건물을 비각이라고 하는데, 이 곳은 다른 곳의 비각보다 크고 화려합니다.

 

규모는 작으나 경복궁의 근정전의 모양새를 따르고 비각이지만 궁궐의 전각처럼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비전(碑殿)이라고 명명한 것 같습니다. 또한, 건물에 ‘전(殿)’자가 붙는 것은 왕과 관련된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될겁니다.

▲ 칭경기념비

▲ 기념비전 천장의 화려한 단청

비몸 앞면에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 망육순 어극 40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 大皇帝 寶齡 望六旬 御極四十年 稱慶記念碑)'라 씌어 있는데, "대한제국의 대황제(고종)의 연세가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인 51세가 되는 것과 보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경사를 기념해서 세운비"라는 뜻으로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천장에는 궁궐의 건물과 같이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 있습니다.

▲ 후면 우측에서 올려 본 전경

▲ 기념비전을 두른 난간석

▲ 기념비전 후면 전경

비각은 이중기단 위에 서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의 다포식(多包式) 건물로 기단둘레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는데 연꽃잎을 새긴 난간 기둥에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음양오행 사상에 의한 방위신의 보호를 뜻하는 사신(四神)과 12지신상을 배치했습니다.

▲ 난간의 석주 위에 새겨진 12지신상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高宗卽位 40年 稱慶紀念碑)는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 안에 있으며,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 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고,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기로소란...

기로소(耆老所)는 노년의 고관들을 우대 관리하는 관청으로 기사(耆社)라고도 하는데 태조 때에 경로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된 관청이며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 중에서 70세 이상된 자나 임금도 연로하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적었다. 태조도 60세로 기로소에 제명하여 입사의 의식을 행하였다.

 

뒤의 임금들은 모두 조사(早死)하여 입사한 이가 없다가 숙종이 59세가 되던 해에 곧 60이 된다 하여 앞 당겨 입사하였고, 영조는 51세에 60을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기사에 들어갔다. 고종도 영조의 고사(故事)에 의하여 신하들의 권고를 받아 입사한 것이다. 군신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 하여 관청의 서열로는 으뜸이었다.

☞ 동아일보 옥상에서 찍었다는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의 비전 모습     이 사진의 좌측에 있습니다.

 

☞ 좌측의 옛 사진은 인터넷으로 자료     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가     져 왔습니다.

칭경기념비 위치도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

 

빨간 압정이 있는 곳에 칭경기념비가 있습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나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됩니다.

출처 : 서울 문화유산 답사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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