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정권 초기, 첫 공개하는 귀한 사진들..
만일에 이승만이 없었다면 6.25때 미국이 참전해
대한민국을 구해 주었을까..? 전 세계에서 초대대통령의 동상이 없는
국가는 대한민국뿐, 북한은 김일성동상이 5,000여개 된다는데..
아래 사진들은 미군종포토 저널리스트인Don O"Brien이
1945-46년 한국에 일본군 무장 해재를 위해 한국에 진주한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출발전 미통신대. 차앞 범퍼에
세워저 있는 도구는 찰조망을 자르는 장비. 유럽에서 기록사진을
촬영하든 미통신부대 (미군은 통신 부대가 기록 사진을 찍는
업무를 담딩한다)는 히틀러의 패망으로 배를 타고 58일간의
긴 항해 끝에 유럽의 반대쪽에 있는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미군과 함께 인천에 상륙했다.
인천항에 도착한 기록사진 요원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
한강에서 배한척이 물살을 가르며 평화로운
핵폭탄 두발을 맞고 항복한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들의 모습.
나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귀국을 했는지 항상 궁금했다.
돌아왔는지 상상을 할수가 있게 되였다.
서울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의 모습.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선 이북에 진추한 소련군인들과 Don O'brien.
이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로 부터 6.25 전쟁 휴전후
저지른 만행을 정말 많이 들어서 이들이 나는 어릴때 괴물같이
북한에 진주한 많은 소련군인들이 형무소에 같여 있든 죄수들도
섞여 있엇다는 사실을 나이들어 문서를 검색해서 알게 되였다.
다와이(내놔), 호로쇼(좋다), 니엣(No)라는 말을 배울 정도였으니
수많은 소련군의 만행을 들으며 자랐다. 북한에서는 소련군을
사진작가 Don O'brien의 집차 앞에서 사진을 찍은 로스케.
내가 들은 소련군의 만행 한토막, 시계를 가져 보지 못했든 소련군은
길에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팔을 검사해서 차고 있는 시계를 모조리 뺏어서
자신의 양팔에 차고 다니다가 태엽을 감을지 몰라 작동하지 않는
밀기울이나 곡물 껍질로 만든 검은 빵을 가지고 다니며, 베개로 이용해 잠잘때
사용하다가 배가 고프면 비고 있는 검은 빵을 뜯어 먹으며, 영하 30도의 한 겨울에도
철길에서 철로를 베고 잠을 잔다는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의 모습.
군표(점령지에 주둔한 군대가 발행하는 돈으로 현지에서만 통용이
가능하다)를 찍어 들고 다니며 가위로 잘라 가며 사용한 소련군의 영향으로
북한 경제에 큰 혼돈을 주기까지 했다. 내가 상상했든 괴물의 모습
못지 않게 이들에게서 야비함과 잔인함 마져느껴진다.
Don O'brien이 소련군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38선을
향해가다철로에 서있는 일본군의 장갑으로 무장한 열차를 발견하고
John R Hodge 미육군 중장. 남한을 통치하는 군정장관 하지
서울 근교에 있는 작은 기차역. 사진을 찍은 오브라인은 아름다운
시가행진을 지켜보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 내부모님 세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군 환영 가두 행진을 하는 보이스카웃과 구경하는 시민들.
강원도 동해안에서 찍은 사진에서 보이는 노인은 눈길에서 비록 집신을 신고,
여기저기 기은 두루마기를 입었으나, 이분의 눈에서 발산하는 섬득할
정도로 무서운 눈빛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보이며,
그 내용은 한국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자 장군은,
계란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해서 현실을 무시한(현실을 몰라서)
물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 한국 어머니의 당당한 모습이 보이는
이한장의 사진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공통 분모인 어떤 역경도
만 4년간 남태평양에서 운행했든 고물이 되여가는 C47 미군 수송기.
똥짱군을 이용해 받에 인분을 뿌리는 농부. 이런 모습은 경기도
연합군 환영 현수막 걸린 건물 앞을 여유롭게 유유히 지나가는 마차 행렬.
광복후의 서울은 현재와 달리 일본 처럼 차량은 왼쪽 통행이었다.
못했으나 내가 보는 사진속의 인물은 여자가 틀림없어 보인다.
이 노신사가 목에 걸치고 있는 털목도리는 개털 목도리가 틀림없다.
팔고 가죽은 일본정부에 바쳤다. 개털이나 가죽으로 만든
경복..??경회루 지붕에 난 잡초를 보면 눈물이 날정도로 애처롭다.
일본군의 무장해재를 하면서 미군이 접수한 군수품중 일본군의
그외 군수품의 행방은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
연합군이 Code Name Sonia로 불렀든 이전투기들은
Mitubishi K1-51 Type99 기종이다. 20여대로 보이는
이전투기들 다 어디갔지..?. 진주한 미군은 일본 열도와
한국내에 남은 일본군의 모든 전투기나 탱크와 각종 무기는
남긴 무기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살아남은 장비는 미
삼척에 있는 한 탄관.
미군이 접수한 마약. 아편으로 알려진 이마약은 일본이
한국인을 이용하기 위해 아편을 사용했다는 증거물로알려졌다.
아편까지 이용해 한국인을 착취한 이들에게 동일본
대지진때 의연금을 걷고 낸 한국인들,
그렇게 36년을 격고도 도와주면 독도문제 들고 나오지
않을것 처럼 믿엇든 한국인들 참 너무 순진하다.
좋은 일본 사람은 죽은 일본넘외에 없다는게 나의 믿음이다.
그당시 이런글 읽으면 아마 나를 보고 모진 사람이라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을 지도 모른다.
일본에 또다시 대지진나면 정부에서 조금 도와주고 민간
일본군의 각번을 차고 도끼질하는 이남성은 아마 일본군에
징집 되였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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